하루 한 권 어린이책 2/30:
<2. 기다려, 오백원! / 우성희 글, 노은주 그림, 단비어린이>
가슴을 울리며 마음을 잔잔하게 어루만져 주는 동화책을 만났다. 우성희 작가의 <기다려, 오백원!>은 네 개의 이야기가 '위로와 치유'를 주제로 옴니버스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는 작품이다. 개인적으로는 호흡이 긴 이야기를 좋아하지만, 이렇게 여러 편의 이야기가 담겨 있는 동화책에도 점점 마음이 간다. 올해 초에 읽었던 김리리 작가의 <감정종합선물세트>와 윤숙희 작가의 <5학년 5반 아이들>도 눈을 떼지 못하고 읽어내려갔다. 물론 두 작품은 우성희 작가의 <기다려, 오백원!>과는 조금 다른 형태로 구성되어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이 동화책은 우성희 작가가 엄마와 있었던 일을 바탕으로 해서 네 편의 단편을 써내려간 이야기라고 한다. 나는 책을 읽을 때 작가의 말을 꼭 읽어보는 편이다. 책을 읽기 전이든, 읽은 후든 상관없이 '작가의 말'을 꼭 살펴봤으면 좋겠다. 작가의 작품 세계를 조금 더 풍성하고 깊게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니 말이다. 작가의 말을 읽은 후 네 편의 동화를 천천히 읽었다. 네 편의 이야기 모두 '아픔, 치유, 위로, 성장'의 키워드를 담고 있었다. 아마도 작가의 마음이 글에도 드러난 것이리라.
다른 이야기들도 좋았지만, 네 편의 이야기 중 나의 마음을 가장 사로잡았던 것은 '세상에서 가장 긴 다리'였다. 엄마와 아빠가 돈을 많이 벌어가지고 온다며 솔이를 할아버지에게 맡기고 떠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솔이는 자신의 마음을 스케치북에 표현하듯 다른 색은 사용하지 않고 검은색으로만 칠한다. 가지 말라고 울면서 말해도 뒤도 한번 돌아보지 않고 떠나가버린 부모에 대한 미움이 반 사랑이 반이 솔이 마음 속에서 다투고 있다.
글을 읽다보면 이 단편의 제목이 왜 '세상에서 가장 긴 다리'인지 나오는데 그 문장을 읽으며 마음이 울컥했다.
"엄마, 아빠는 전화 한 통도 없다. 나도 더 이상 기대하지 않는다. 하지만 습관이 됐는지 자꾸만 목을 길게 빼고 섶다리 너머를 바라본다. 이상하게 섶다리는 흰 눈이 쌓이는 계절이 지나면 더 길어지는 것만 같다. 이제 세상에서 가장 긴 다리가 되었다."
해가 지날 수록 체념하면서도 놓을 수 없는 솔이의 마음이 그대로 담겨 있는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
할아버지가 전지하러 가는 정원에 따라간 솔이는 할아버지의 장난에 살짝 마음을 연다. 손녀 딸이 마음에 아픔을 가지고 자라지 않도록, 사회에 나가서 잘 살아갈 수 있도록 애쓰는 할아버지의 마음이 느껴진다. 아마 자신이 죽었을 때 홀로 남겨질 손녀의 모습이 마음 아파서 그랬을 것 같다고 생각해본다. 우성희 작가는 세 편의 단편과 달리 여기에서는 현실 세계와 판타지의 세계를 혼합시켜 놓았다.
할아버지가 잘 다듬어 놓은 동물 모양 나무들이 살아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기린과 독수리, 타조들이 솔이와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비록 주인 아주머니의 말로 인해 얼마 있지 못하고 현실 세계로 돌아오긴 했지만, 그 잠깐의 시간이 솔이가 새로운 희망에 발을 내딛는 데, 자신의 다친 마음을 치유하는데 조금은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아빠와 엄마가 자기를 떠난 후 세상에서 가장 길게 느껴졌던 섶다리가, 돌아오는 길에는 그리 길게 느껴지지 않는 다는 말과 하얀 크레파스를 든 솔이의 모습에서 안타까웠던 나의 마음이 조금은 안심이 되었다. 아이들은 자신을 믿어주고 바라봐주는 어른 한 명만 있어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을 가질 수 있다고 한다. 할아버지와 함께 자신의 길을 걸어나갈 솔이의 모습이 조금씩 그려지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