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주 문학관[인문학 속 감자 특강] - 손희경 북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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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주 문학관[인문학 속 감자 특강] - 손희경 북큐레이터


충주 문학관[인문학 속 감자 특강] - 손희경 북큐레이터

'책 수다'라는 말을 아세요?
수다, 즉 '쓸데없이 말수가 많음'이라는 뜻의 그 수다 맞아요. 가끔 책을 읽고 나서 수다가 그리울 때가 있어요. 가장 자주 '책 수다'를 들어야 하는 사람은 당연히 우리 '묵은지' 지만, 늘 수다떨기가 부족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충주 문학관에서 [인문학 속 감자 특강] 이란 재밌는 기획을 하였습니다.

"오호? 인문학 속 감자라… 어떤 깊은 뜻이?"

문학 속에 등장하는 '감자'를 주제로  김동인의 단편 <감자>, 김유정의 단편<동백꽃>을 선정하여 2주차 2회 북토크 진행 요청을 주셨어요.(제게는 그 제안이 마치, '책 수다'를 떨자는 말로 들렸어요.)

두 편 모두 '감자'가 사건의 전환점이 되는 인상적인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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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자'는 우리가 알고 있는 구황작물 중 대표적인 식물입니다. 포슬포슬 삶은 감자의 껍질을 벗겨 묵은 김치 한 조각 얹어 먹어도 맛있고 버터를 녹인 팬에 둥글둥글 굴려 구워 먹어도 질리지 않는 맛이지요. 그래서일까요? 고속도로 휴게소에 가면 감자로 만든 먹을거리들이 다양하게 구비되어 있답니다. 요즘은 회오리 감자가 대세지만 이렇게 감자가 간식거리가 된 것은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먹을 것이 귀했던 1900년대까지만 해도 감자나 고구마 같은 뿌리식물들은 귀한 끼니 거리였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1919년 3월 1일 거족적인 독립만세 운동이 일어납니다. 세계적으로 높아지고 있었던 민족자결주의 영향이 동북아시아 끝자락 일본의 지배 하에 있던 우리나라에까지 미친 것입니다. 3·1운동의 결과로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세워졌지만 한민족이 원하던 독립은 멀기만 했습니다. 전국 방방곡곡에서 태극기를 들고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대한민국 만세'를 외쳤음에도 성과 없이 끝나자 좌절과 허무, 분노가 사회 전반에 퍼습니다. 1910년대 들어와 계몽을 외치던 문학은 20년대에 들어서면서 이러한 사회적 영향을 받아 현실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는 사실주의 경향의 자연주의와 예술주의, 유미주의가 주목을 받기 시작합니다. 이 시기에 대표적인 작가였 염상섭, 나도향, 채만식, 현진건, 김소월, 김억 등이 김동인과 함께 활동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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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운명은 환경에 의해 이미 결정되었다."

 자연주의의 특징은 '환경결정론'입니다. 어쩌면 한민족이 마음을 모아 함께 '독립만세'를 외쳤음에도 일제의 통치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충격으로, 무엇을 해도 나아지지 않는다고 생각하게 되어, 현재 모습을 운명이라 인정하는 현실 도피를 택하면서 인간의 노력으로 운명을 벗어날 수 없다는 냉소적 자각이 자리 잡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김동인의 단편 <감자>는 이 시기를 배경으로 1925년 발간되었습니다. 김동인의 단편 모음집 속 <감자>뿐 아니라 다른 작품에서도 주인공은 자신의 운명에 저항하기보다는 적당히 순응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특히 <감자>의 주인공 복녀는 기존 가지고 있던 자신의 두려움마저 버리고 다른 이들의 살아가는 방식을 그대로 따라가는 모습을 보입니다. 김동인의 작품은 몇 개의 작품을 제외하고 대부분이 삼인칭 시점으로 간결하고 압축적인 대화 형식으로 진행되며 작가의 주관적인 감정이나 설명 없이 객관적인 관점으로 전개되는 특징을 보입니다.

 1930년대에 들어서면서 우리나라를 둘러싼 정세에 변화가 생깁니다. 일본은 만주사변을 시작으로 중일 전쟁을 일으켰고 태평양 전쟁으로 확대하게 됩니다. 일본의 전쟁 준비와 지원을 위해 우리나라는 병참기지화가 되고 군수물자를 만드는 공장이 들어서면서 도시화가 진행됩니다. 필요한 군수 자원을 확보하기 위해 민간인들의 살림살이까지 수탈하고 젊은 남자와 여자들을 내선일체와 황민화라는 미명 아래 마구잡이로 잡아 들이기 시작합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시기에 문학은 도리어 다른 어느 때보다 많은 작가들이 등단합니다. 앞서 1920년대의 자연주의, 예술 주의, 유미주의의 감정 정서를 배제하고 엄밀하게 잘 다듬어진 언어와 형식의 모더니즘과 카프 계열이 새로운 문학 흐름을 만들어 갑니다.

"현대문학의 주춧돌은 김동인이 세우고 현진건이 길을 닦았으며 이태준에 와서 완성되었다."

 이 시기에는 '조선의 모파상'이라 불린 문장가 이태준과 정지용, 이효석, 김영랑, 서정주, 김동리, 노천명, 유치환, 이상, 권태응 등이 김유정과 함께 작품 활동을 합니다. 특히 김유정은 토속적이며 생명력 넘치는 삶을 해학적으로 그려내고 있습니다. 우리 말과 고향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던 김유정은 소설 속에 향토어를 주로 사용하여 우리말에 대한 깊은 사랑을 보여주고 있습니다.(그래서 현대에 와서 가독성이 떨어지는 단점도 있습니다.) 이러한 김유정의 작품은 우리나라 말의 풍부함과 다양성을 보존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김동인의 <감자>와 김유정의 <동백꽃>에 나오는 '감자'는 주인공보다 조금 더 있는 자들의 것이었습니다. 민중들 누구나 가질 수 없었던 '감자'는 먹을거리로만 상징되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김동인의 <감자>에서는 그 '감자'를 동네 아낙들이 모두 서리하니까 자기도 거리낌없이 서리하는 복녀가, 김유정의 <동백꽃>에서는 더운 김이 홱 끼치는 '감자'를 거절하는 나가 등장합니다. 두 작품에서 '감자'는 사회 가장 밑바닥 생존의 위기에 처한 주인공들에게 그들의 처지를 한 번 더 확인시켜주는 역할을 합니다. 그것은 바로 '감자' 그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생계 위협에 처해진 주인공에게

'가난'이란 물질적 조건이 삶의 선택에 어떤 영향을 발휘할 수 있는가

를 생각 하게 합니다. 멀리 떨어져서 보면 어렵지 않을 것 같은 '선택'이지만 당장 내 앞에 벌어진 상황이라면 과연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지금 마음으로는 윤리적인 기준에 따라 이성적 판단으로 '선택'이라는 것을 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정작 그 상황에 처한다면 과연 어떤 '선택'을 할 것이라고 장담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나라를 잃고 우리말을 목숨을 걸고 지켜야 했으며 이름을 버리지 않으면 죽음을 감수해야 했던 시절, 나라를 버리고 친일을 한 이도 있고, 그것을 부끄러워한 사람과 도리어 뻔뻔함으로 일관한 이들도 있었지만, 핍박과 배곯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우리의 말과 글을 지킨 작가들도 많습니다. 부끄럽거나 자랑스러운 그 시절은 모두 우리의 역사입니다. 그 시대를 살았낸 작가들이 있었기에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문학으로 남아 후대의 우리들이 그 시절을 이해하고 기억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모든 작품을 읽을 때 필수는 아니지만, 고전의 경우 시대적 배경을 알고 읽으면 공감과 이해에 많은 도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충주 문학관과 2주간에 걸쳐 진행한 '인문학 속의 감자 특강'은 작품에 대한 이야기와 작품이 나온 시대적 배경, 작가의 특징에 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참여하신 분들께서 시대적 배경을 알고 재독을 하니 앞서 읽은 것과 다른 울림과 공감을 느낄 수 있다는 말씀을 주셔서 얼마나 기뻤는지 모릅니다. 이런 경험을 통해 감히, 어린 시절 매혹만이 존재하던 순수한 독서의 시간을 다시 찾게 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숨죽이며 책장을 넘기던. 어린 독자의 방으로
오직 매혹만이 존재하던 순수한 독서의 시간으로.
우리가 시작했고. 언젠가 떠나왔지만,
결국에는 다시 찾게 될 ‘잃어버린 세계’로.
-금정연 <실패를 모르는 멋진 문장들: 원고지를 앞에 둔 당신에게> 중에서"

충주에, 탄금대라는 곳이 있습니다. 신라 우륵의 가야금과 관련한 설화가 있는 곳인데 무척 아름다운 풍광을 지니고 있습니다. 바로 이곳에 열혈 독립운동가였던 권태응 시인의 '감자꽃' 시비가 있습니다. '감자꽃'은 창씨개명과 내선일체를 강요한 일본을 (요즘 말로) 저격한 동시니다. 혹시 충주에 가신다면 꼭 한번 들러 보시길 강력 추천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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