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이야기 - 조안이혜(한국북큐레이텨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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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책으로 도망간다> 첫 번째 이야기 - 조안이혜(한국북큐레이텨협회)


 <나는 책으로 도망간다>
첫 번째 이야기 ‘책 인생의 서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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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미안》

최근 tvN 〈책 읽어드립니다〉에서 소개되어 핫한
헤르만헤세의 책, 《데미안》.

저는 이 책을 초등학교 6학년 때 만났습니다.
이제 막 사춘기가 찾아온 여자아이를 두근거리게 만든 첫사랑이 선물했기 때문이지요.

이후로도 여러 번 《데미안》을 다시 읽었지만, 확실히 이 책은 초등 6학년생이 읽기 쉽지 않습니다.
심지어 저는 이전까지 책 한 줄 읽지 않는 글자만 아는 책문맹이었거든요.
그러니, 첫 책으로 헤르만헤세를 선물 받았으니 그 괴로움을 짐작하실 만 하지요?
아직도 책 한 장을 넘기기 위해 머리를 몇 번씩이나 베개에 꽁꽁 박아가며 끙끙거리던 13살의 제가 생생합니다.
그래도 끝까지 이 책을 놓지 않았던 것은 첫사랑이 선물한 것이었기 때문이었지요.
결국 저는 위대한 사랑의 힘으로 한 달 만에 《데미안》을 기어이 다 읽어냅니다.
일종의 인간승리였지요.
그때의 뿌듯함이란 이루 말할 수가 없습니다.
이제 드디어 첫사랑에게 답장을 쓸 수 있게 되었으니까요.
“나 네가 준 책 읽어봤는데 말이야, 좋더라.”라고 거들먹거리면서요.
사담입니다만, 저의 책인생을 열어준, 데미안 총각은 지금 서울에 위치한 어느 외국어 고등학교의 인기절정 영어 선생님으로 근무 중입니다.

네, 어찌됐든 저는 이렇게 책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수레바퀴 아래서》, 《데미안》, 《개미》,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노인과 바다》 등 세계문학전집을 장식하고 있는 책부터 당시 가장 핫한 작가였던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책까지 닥치는 대로 읽기 시작했습니다.
중학교에 입학한 후에는 교과서에서 소개하고 있는 《봄봄》, 《소나기》, 《사랑손님과 어머니》, 《몽실언니》 같은 책들을 찾아 읽었고요.
한 번 열린 독서의 세계는 그렇게 깊어져서, 긴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도 손에서 책을 놓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주변에 책 좀 읽었다 하시는 분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제 경우처럼 운명적인 책 1권을 만나서 책을 읽게 되신 분들이 적지 않습니다.
어느 작은도서관 선생님은 중학교 때 국어 시험에 유독 어떤 책에 관련된 지문만 나오면 문제를 틀리기에 하도 기가 막혀서 ‘내가 이 책을 읽어서 절대 문제를 틀리지 않겠다’하고 시작하여 결국 다 읽어낸 책이 《토지》라고 하시더라고요.
《토지》를 읽고 나니, 다른 책 읽기가 무섭지 않았다고 하시며 웃으시는 모습을 보고, 자신만의 인생 책을 만나는 것이 얼마나 한 사람의 인생에 큰 영향을 미치는가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이 글을 읽고 계시는 선생님들은 아마 대부분 북큐레이터로서 하루에도 수없이 많은 책을 선별하고, 추천하고 계실 거라 생각해요.
 

 제가 앞서 장황하게 저의 과거를 들추어냈던 것은 선생님들께서 하시는 일이 누군가의 인생에 얼마나 고귀한 시작을 열어주시는 일인가 말씀드리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소중한 일을 해주시는 선생님들께 깊은 감사를 표하고 싶기도 했고요.

그렇습니다.
저에게 첫 북큐레이터는 초등학교 6학년 데미안 총각이었습니다.
그 친구가 어떤 이유로 제게 《데미안》을 추천했는지 지금까지도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데미안》은 지금까지 제가 책을 읽을 수 있었던 시작이 되어주었고, 사유하는 독서의 재미를 알게 해주었으며, 책과 관련된 직업과 직군에 근무하고 이력을 쌓아 활동할 수 있게 해주는 기반을 마련해 주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저는 그 친구에게 큰 빚을 지고 있는 것이지요.

저는 북큐레이터라는 직업이 한 사람의 인생을 열어주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어떤 책에서 상대의 삶이 열릴지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만, 그 인연을 지어주는 것. 그것은 이루 말할 수 없이 감사하고 귀한 작업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니 선생님들께서 북큐레이터라는 직업을 통해 더 많은 아이들과 사람들에게 책을 읽는 기쁨과 인생 책을 만나는 행복을 선물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책으로 행복을 삼아 살아가는 저는 하지 못하는, 선생님들만이 가진 귀한 능력이니까요.
날씨가 춥습니다.
감기 조심하시고, 언제 어디에 계시건 세상의 사랑이 선생님들과 함께 하시기를 기도합니다.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2019년 12월 24일
크리스마스 이브에 사랑을 담아
조안이혜 드림.
 


 

https://band.us/band/53359673/post/92672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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